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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의문화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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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운구곡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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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운구곡도

傍 花 溪 (제 1곡)

靑 玉 峽 (제 2곡)

神 女 峽 (제 3 곡)

白 雲 潭 (제 4곡)

鳴 玉 瀨 (제 5곡)

臥 龍 潭 (제 6곡)

明 月 溪 (제 7곡)

隆 義 淵 (제 8곡)

疊 石 台 (제 9곡)

곡운구곡도

 

곡운구곡도(谷雲九曲圖)는 지금의 강원도 화천 용담리 일대에서 30년 가까이 은둔 생활을 한 곡운(谷雲) 김수증(金壽增-1635~1705) 선생이 빼어난 경치에 이름을 붙인 뒤 당대의 화가 조세걸(曺世杰)에게 그리게한 작품으로 이 작품은 조선시대의 실경산수화가 실제 경치와 유일하게 일치하는 작품으로 문화적 가치가 매우 큰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한국의 자연경관 문화에는 3경(景), 8景(詠), 9景(曲), 10景(詠), 12景(詠)이 있는데 8경은 약 98처, 9곡은 6처가 파악되고 있습니다. 9곡은 강원도 화천의 곡운구곡(谷雲九曲), 강원도 삼척의 무릉구곡(武陵九曲), 충청도 괴산의 화양구곡(華陽九曲), 선유구곡(仙遊九曲), 고산구곡(孤山九曲), 황해도 해주의 고산구곡(高山九曲)등 6개처가 밝혀지고 있습니다.
구곡(九曲)의 연원은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희(朱熹:1130~1200)의 무이구곡도(武夷九曲圖)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朱熹는 처음 건영부(建寧府) 숭안현(崇安縣) 오부리(五夫里)에 살았고 41세에 건양(建陽)땅 노봉(蘆峰)아래 운곡(雲谷)에다 회암(晦庵)을 짓고 숭안에서 80리를 왕래 하였습니다.


1183년 그가 54세때 오부리(五夫里) 무이산하(武夷山下) 30리 되는 곳에 무이정사(武夷精舍)를 만들었는데 여기서 이듬해 1184년 7언절구의 무이도가(武夷櫂歌)를 지었습니다. 주자는 무이정사잡영서(武夷精舍雜詠序)에서 이곳의 산세, 정사의 위치, 근처의 승경, 인간에 끼치는 자연의 영향, 동호인, 제자들과의 생활을 기술하면서 12수의 시를 읊습니다.따라서 이러한 자연의 묘사는 시가(時歌)의 모티브로서 오래 전부터 관용되었으나, 1곡에서 9곡까지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자연모사 방법은 구곡도(九曲圖) 또는 구곡가(九曲歌)라는 특수한 산수화와 묘사시의 장르를 이루게 됩니다.

조선왕조는 건국과 더블어 그 국가이념을 주자의 성리학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에 구곡도의 형식은 주자의 철학과 함께 자연스럽게 유행된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에서의 구곡도(九曲圖-時)의 연원은 선초 안평대군의 무이정사에서 찾고, 퇴계(退溪)의 무이구곡도와 율곡(栗谷)의 고산구곡도에 이르러 정착되며, 곡운(谷雲) 김수증(金壽增-1635~1705)의 곡운구곡(谷雲九曲)에 맥통 된다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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