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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및통일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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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郡名부터 살펴보도록 하겠다. 「삼국사기」 권35(지리지 2)를 보면 「狼川君은 본래 고구려의 성川郡. 也尸買라고도 한다」 라고 쓰여 있다. 狼川,성川이 漢字式 地名인데 반해 也尸買는 우리말 즉 音借가 되겠다. 이들 뜻풀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해석이 있다. (2)

 

(1) 성 「也尸」 가 「얕」 (淺)이고, 「성」 ,「狼」의 訓이 「이리」이므로 이리 - 일 - 읻 - 얃 互轉에 의한 「얃」의 訓借이다.
(2) 川 「나라, 나리」의 訓借이다 「므」(水) 音借이다.
1) 조선총독부,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 」, 551쪽, 1942.
2) 신태현 「삼국사기 지리지의 연구」, 65쪽, 우종사 1958.
 「성川」은 「얃다리」(淺川)이다.

 

이러한 說에 대한 필자의 의견을 피력하면 다음과 같다. (1)「성」은 성성이, 살쾡이의 뜻으로 대략「狼」즉 「이리」와 의미가 통한다. 다만 이리·일「얃」으로 호전되어 성·狼(川)이 「얕은 (내)」의 뜻이라는 설명은 설득력이 없다. 오히려 「也尸」는 성·狼의 音借로서 「이리」를 이르는 말이다. 경상도 방언에 여우를 「야시」또는 「여시」라고 하여 아직도 이 말이 남아 있다. (2) 「川」이 「買」즉 「물」의 訓借라는 데는 동의한다. 그렇다면 오히려 성川·狼川의 뜻은 「여우나루」또는 「여우물」이 될 것이다.

낭천군의 領屬 연혁을 살펴보면, 낭천은 본래 고구려의 성川이었다. 하므로 이지역이 신라에 편입되기 전에는 고구려의 영토였다. 그렇지만 그 이전에는 백제가 한강 하류에 도읍을 정하고 한반도 중부지역을 차지했던 점으로 미루어보아, 한강 상류에 위치한 낭천도 처음에는 백제의 영토였었다고 짐작된다. 그러다가 고구려 광개토대왕 때에 이르러 남쪽으로 임진강·한강 유역까지 영토를 확장하였고, 다음 代의 장수왕이 428년에 도읍을 평양으로 옮김에 따라 비로소 낭천 지역은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다고 하겠다. 고구려의 위세에 몰린 백제와 신라 두 나라는 각각 성왕·진흥왕 때에 동맹을 맺어 고구려를 한강 유역에서 축출한 뒤(551) 신라는 그 상류 10郡을 차지하고, 이어 백제가 차지했던 한간 하류 지역도 백제로부터 탈취하였다.
이렇게 보면 낭천지방은 원래 백제의 영토였다가, 5세기에 들어서면서 고구려의 지배를 받았고, 6세기 중엽부터 신라의 영토로 편입되었다고 하겠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대개 신문왕 7년(687)에 이르러 9州 5小京制의 완성을 보게 되는데, 옛 고구려 지역에는 漢山州·首若州·河西州를 두었다. 낭천군은 수약주에 속한 郡인데, 경덕왕 16년(757)에 수약주를 朔州로 이름을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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